서울에서 다시 만난 유럽

은평한옥마을-진관사 기행

이현재기자 승인 2023.08.09 11:21 의견 0
< 은평한옥마을 입구로 들어와 (사진제공 : 이현재기자) >

기자는 예전 유럽에서 유학 생활을 할 때 방학이 되면 가족들과 유럽 각국으로 여행을 가곤 했다. 역사가 오래된 유적지, 자연풍광이 수려한 산과 바다, 종교적 깊이를 느낄 수 있는 사원과 성당 등 다양한 주제를 지닌 관광지를 다녔던 갔다.

한국에서도 유럽을 느낄 수 있는 곳들이 많이 생겼다. 경남 남해의 독일마을, 가평의 프랑스와 이탈리아 마을 등이 있다. 그런데 이런 곳들은 유럽을 인위적으로 조성되어 유럽 여행을 다녀온 이들에게는 매력이 반감될 수도 있다. 만일 우연히 가 본 곳에서 유럽을 느낄 수 있다면 어떨까?

서울 은평구 끝자락에 가면 유럽을 만날 수 있는 곳이 있는데 은평한옥마을과 진관사이다. 은평한옥마을은 2017년 서울 진관동에 조성된 현대식 한옥마을이다. 이곳의 한옥들은 주민들의 거주지나 사유지라서 소유주의 허락을 받아야 내부를 관람할 수 있다. 그렇지만 외관만 보더라도 한국의 건축미와 정서를 충분히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대중교통의 경우 버스를 타고 한옥마을 입구에서부터 도보로 이동해야 하는데 날씨가 좋은 봄과 가을에는 천천히 걷기에 그만이다. 만일 차량을 이용한다면 인근 진관사 근처에 주차하면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다. 점심 무렵에 도착해 주변 식당으로 이동했다. 한여름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었지만 한옥마을의 멋진 한옥들을 눈에 담으면서 가다보니 식사 장소에 도착했다.

한옥마을 관람에 걸맞게 한식당을 찾았는데 소박한 분위기가 오히려 편안함을 주었다. 가성비 있는 다양한 한식을 맛보니 금방 밥공기를 비워졌다. 요즘처럼 물가가 고공행진을 하는 상황에서 든든한 점심 한 끼를 먹으니 한옥마을 여행의 기대감이 커졌다. 식사를 마치고 나와서 천천히 한옥마을 주변을 둘러보았다. 한옥마을에는 고유의 한옥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단정한 느낌의 단독주택들도 제법 많이 볼 수 있었는데 오히려 한옥과도 조화를 이루는 듯했다. 멀리 북한산을 두고 단독주택이 자리한 도로를 따라 한옥들이 함께 눈에 들어왔다.

< 단아하면서 고풍스러움이 느껴지는 한옥 (사진제공 : 이현재기자) >

그런데 그 순간 기자의 마음을 설레게 한 것은 도로 주변의 풍경이었다. 잠시 태양이 구름 뒤로 가려지면서 펼쳐진 마을의 풍경은 스위스의 어느 마을이라고 해도 충분했다. 북한산 밑에 이처럼 조용하고 아름다운 풍경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 정말 행운이었다. 잠시 스위스에 온 듯한 느낌을 만끽하면서 마주한 것은 정겨운 한옥들이었다.

마치 동서양의 모델의 패션쇼를 하는 것처럼 단독주택을 지나고 나면 깔끔하게 자리한 한옥들이었다. 푸른 하늘과 주변 녹음에서 한옥의 자태는 부드러운 아름다움을 선사하고 있었다. 수변 공원을 따라 마주한 한옥들을 구경하다보면 어느새 한옥마을의 입구에 다다르게 된다. 아쉽게도 한옥마을을 방문한 날이 월요일이어서 은평역사한옥박물관과 천상병, 중광, 이외수 3인의 작품세계를 전시하는 셋이서 문학관은 휴관이었다.

< 은평한옥마을에 느껴본 스위스의 정취 (사진제공 : 이현재기자) >

한낮의 더위로 땀으로 젖은 몸을 식히기 위해 한옥 카페를 찾았다. 평일에도 카페는 제법 사람들로 붐볐다. 시원한 곳에 자리를 잡고 주문한 팥빙수와 차가운 냉커피를 먹으니 새삼 삶의 여유로움과 입가의 즐거움을 동시에 만끽할 수 있었다. 카페에서 음료를 마시면서 이야기에 집중했던 것과 달리 한옥 카페에서는 카페를 찾은 다른 사람의 모습들을 자주 눈에 담게 되었다.

삶의 각박함은 조금은 내려놓으면서도 삶의 소소함을 챙겨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시원함에 길들여져 밖으로 나가는 것이 두렵기도 했지만 오늘 기행의 마지막을 장식할 그곳을 가기 위해 익숙함을 내려놓기로 했다.

< 소담하고 편안한 분위기의 한옥 카페 내부 (출처 : 기자 촬영) >

오후의 태양은 다시 우리를 뜨겁게 맞이했다. 태양을 피하는 방법은 오직 하나 진관사로 올라가는 것이었다. 진관사는 주변에 계곡과 북한산 등반로 품고 있어 다양한 여가활동을 할 수 있는 곳이다. 그래서 주말에는 알만한 사람들에게는 잘 알려진 인기 만점의 장소로 북적인다고 한다. 주차장 구역의 일주문을 지나면 오르막길에 접어든다. 주변으로 석불상이 자리하고 있고 여러 채의 전각(殿閣)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좌측에 자리한 사원 건물들과 우측에 계곡은 인간과 자연이 서로를 보듬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다양한 소원 글귀가 적힌 카드들이 달려있는 홍제문 아래를 지나면 북한산을 등지고 있는 빼어난 건물을 볼 수 있는데 바로 대웅전이었다. 대웅전을 중심으로 사방에는 여러 전각들이 있는데 마치 잘 정돈된 대궐에 온 느낌이었다. 대웅전 내부에 들어서면 세 개의 부처상을 마주하는데 천장의 화려한 조형은 대웅전의 신성함을 더욱 높여주고 있었다.

< 진관사 대웅전 앞에서 (사진제공 : 이현재기자) >

특히 주목해야 할 곳은 대웅전 옆에 자리한 칠성각인데 2009년 복원공사 시 태극기 발견되었다. 진관사에 발견된 태극기는 독립운동 당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면서 진관사가 독립운동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음을 보여주는 곳이었다. 1011년 고려 현종 때 건립된 천년고찰인 진관사는 템플스테이, 산사음식 체험으로도 널리 알려진 곳이다. 미국 조 바이든 대통령의 부인인 질 바이든 여사를 비롯해 해외 유명인사들이 진관사를 찾아 산사음식을 체험하면서 진관사의 산사음식은 진관사를 대표하는 브랜드가 되었다.

< 태극기가 발견된 칠성사 (사진제공 : 이현재기자) >

기자는 진관사의 전각들 멀리 북한산 그리고 전각들의 벽화와 단청을 보면서 기시감(旣視感)이 느껴졌다. 그것은 불가리아의 릴라의 수도원이었다. 불가리아 소피아를 여행하면서 방문했던 릴라의 수도원은 동방정교원 수도원으로 정교하면서 화려한 색감의 건축물로 오지에 있음에도 많은 관광객들을 불러모으는 곳이다. 물론 릴라의 수도원에서 느꼈던 그 느낌을 진관사를 방문하면서 다시 느껴졌다.

진관사의 벽화와 천장화의 유사한 분위기는 릴라의 수도원으로 소환하고 있었다. 개인적인 느낌이지만 한옥마을에서 스위스를 그리고 진관사에서 불가리아를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예상치 못한 선물이었다.

< 릴라의 수도원을 연상시킨 진관사의 한 전각 (사진제공 : 이현재기자) >

그렇지만 선물은 더 남아있었다. 전각을 나와 계곡쪽으로 가는 길에는 세심교(洗心橋)를 건너야 했다. 다리를 건너면서 양쪽의 맑은 물을 보니 마음이 절로 깨끗해지고 차분해졌다. 잠시 계곡을 바라보면서 마음과 생각이 정화되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세심교’라는 이름이 참 잘 어울렸고 옛 선현들의 혜안이 돋보이는 작명이었다. 세심교를 건너서는 자연과 함께 어우러지는 공간이었다. 계곡을 따라 오층탑을 마주하면서 북한산 둘레길과 자연스럽게 이어지는데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느낄 수 있었다. 서울 안에서 이렇게 귀한 문화재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이 참 축복이라는 생각과 함께 유럽을 다시 느낄 수 있는 숨은 공간이라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 세심교를 건너며 바라본 북한산 계곡 자락 (사진제공 : 이현재기자) >

막연한 기대로 향했던 그곳에서 새로운 영감을 얻고 잊고 있던 역사를 살필 수 있었다. 그리고 삶의 빠른 재충전과 느린 시간의 미학도 덤으로 얻어갈 수 있었다. 유럽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었다. 서울 안에서도 충분히 만날 수 있는 곳이었다. 바로 은평한옥마을과 진관사에서 삶의 새로움을 만끽하기를 기대한다.

<끝>

[서울=나우인터넷뉴스=이현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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