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북구 역사 여행〕
✱ 근현대사 기념관, 4.19 민주공원묘지, 윤극영 가옥, 문익환 가옥을 여행
서울특별시 동북단에 위치해 있으며 동쪽은 노원구, 도봉구, 서쪽은 경기도 고양시, 남쪽은 성북구, 북쪽은 경기도 양주시, 도봉구와 경계를 이루고 있는 서울의 외곽지역이다.
북한산 기슭에 위치한 강북구는 공원과 녹색의 면적이 전체의 60% 차지하는 서울에서 가장 살고 싶은 동네 구민의 삶의 질을 높이고 경쟁력이 있고 도시로 발돋움 할 수 있는 곳이다.
북한산을 배경으로 국립 4.19민주 묘지는 1961년 공원묘지 설립을 결의하여 1963년에 묘지를 준공하고, 1995년 김영삼 정부가 들어서서야 비로소 성역화 사업을 거치고 국립묘지로 승격했고, 1997년 4원에 4.19혁명 기년관이 들어섰습니다.
국립 4.19 민주묘지 입구에는 민주서역 표지석과 9개의 기둥이 있고 순수한 영혼들의 제단의 순백의 화강암 기둥이 푸른 하늘을 향해 뻗어 있는 4.19혁명의 상징물이 있는 4.19 민주묘지는 우리나라의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장소 중의 하나로 민주화 운동의 중요한 기념비와 묘소가 있는 곳이다.
이 묘지는 1960년 4월 19일에 발생한 4월 19일 혁명은 1960년에 벌어진 민주화 운동으로 당시의 대통령이었던 이승만 대통령의 독재와 부정선거에 반발하여 시민들의 민주화 운동으로 시작이 되었고, 이 운동은 서울과 전국적으로 확산이 되었으며 결국에는 이승만 대통령의 사퇴를 하였고, 이사건의 우리나라의 민주화의 중요한 분기점이 되었다.
묘지 내에는 기념비와 희생자들을 기리는 다양한 기념비와 정원으로 되어있고, 가장 높은 곳에는 목조 건물이 유영 봉안소가 있고, 유영 봉안소는 4.19혁명으로 희생되신 분들의 위패와 영정이 모셔놓은 곳이 있고, 밑으로 묘비가 있고. 밑으로 4.19혁명 기념탑과 대한의 건장한 남,여 한 쌍의 정의와 자유를 수호하는 형상을 역동적으로 표현 조형물이 있다.
오른 편으로 산책로가 있고, 4.19혁명 기념관이 있다. 기념관 안에는 4.19혁명의 전개 과정과 독재에 저항해 일궈낸 민주주의 4.19혁명이 국제사회에 미친 영향까지 다양하게 전시가 되어 있다.
근현대사 기념관은 일제 강점기 시대에 활동했던 독립운동에 관한 자료들과 광복 이후의 삶 등의 거의 100년 가까운 시대의 자료가 전시가 되어 있다.
설립의 취지는 강북구는 3.1운동의 발원지인 봉황각과 순국선열들의 묘역, 그리고 국립 4.19민주 묘지가 자리 잡고 있는 독립정신과 민주주의 성지 이다. 그 높은 뜻을 기억하고 전파하기 위해 2016년 5원 동학농민운동에서부터 4.19혁명가지 우리역사를 담은 근현대사기념관을 열었다.
근현대사기념관은 자유, 평등, 민주, 의 이념이 선열들의 피땀 흘려 체득하고 축적해 온 소중한 가치와 독립 운동가들이 꿈꾼 나라, 사월혁명의 투사들이 소원했던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의 미래상임을 알리고자 설립을 하였다.
전시 되어 있는 것은 짓밟힌 산하, 일어선 민초들과 우리가 사는 나라는 민주 공화국, 등들이 있고, 야외에는 독립민주기념비, 순국선열의 애국지사 흉상, 비운의 헤이그특사 기획(2023. 8.8 – 11. 30 까지) 전시도 진행을 하고 있다.
4.19 묘지공원과 근현대사 기념관을 돌다 보면 다리도 아프고 더위도 식히기 위해 근처에 있는 한옥 전통 카페를 찾아 들어가서 메뉴판을 첫 장에는 사장님의 카페 운영의 마인드가 느낄 수 있는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당신과 전통 차 사이에 담장을 허물고 싶다는 문구였다. 전통차를 부담 없이 편하게 즐겼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윤극영 가옥은 1958년 수유동 산 6번지에 집을 마련을 하고 작곡에 전념할 수 있는 작업실을 지었다. 이 집에서 색동회 회원을 다시 모아 조직을 확대 개편하는 준비를 하였고 수백편의 동요를 작곡을 하였다.
현재 가옥은 윤 국영이 작고할 때 까지 큰 아들 윤 봉섭이 2013년 까지 거주하였다. 서울시에서 이 집을 유족에게 매입하고 윤 국영의 유품을 기증을 받아 서울 미래유산 제 1호로 지정하고 2014년 10월부터 일반인에게 개방을 하고 있다
동요 작곡가 윤 국영은 우리나라 어린이 문화운동에 큰 기여를 한 동요작사 작곡가이다 우리나라의 최초의 창작동요인 『설날』, 『』반달』, 『귀뚜라미』, 『고기잡이』, 같은 곡은 많은 이들이 지금까지 즐겨 부르는 동요이다.
일제 강정기 우리말과 문화를 뺏긴 슬픔 속에 자라나는 아이들의 마음을 나누려는 것으로 시작 한 동요 짓기는 평생 이어졌다. 동요는 7백여 편의 곡을 작사, 작곡하여 동요 보급 운동을 하였고, 동화와 수필, 시 같은 문학작품도 수백 편을 남겼다.
윤 국영 선생님은 동요 작사, 동요작곡가, 아동문학 운동가와 반달 할아버지로 유명하다.
문익환 통일의 집은 민주화와 통일을 위해 헌신했던 문익환 목사가 1970년부터 1994년까지 살았던 집이다.
문익환 목사 탄생 100주년을 맞아 시민들의 후원으로 집을 복원하여 2018년 6월 1일 사립 박물관으로 재개관하였다.
이곳은 근 현대사의 귀중한 자료들을 보존하고 연구하며 전시와 교육을 통해 평화와 통일을 함께 꿈꾸는 열려있는 공간이다.
그의 활동은 1978년 유신헌법비판성명서 발표, 1980년 YMCA 위장결혼사건, 1986년의 인천 5.3사건과 서울대하교 연설 사건으로 이어졌으며, 그 뒤 통일 운동에 매진하여 재야 통일관련 단체의 구심점이 되었다. 특히 1989년에는 실정법을 어기고 방북하여 김일성을 면담하고 북한의 조국평화통일 위원회와 공공설명을 발표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활동들로 인해 여섯 차례 투옥되어 10여 년을 감옥에서 보냈다. 1992년에는 노벨평화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으며, 같은 해 제3회 4월 혁명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주요 저서로는 시집에 『새삼스런 하루』(1973), 『꿈을 비는 마음』(1978), 『난 뒤로 물러설 자리가 없어요』(1984), 『한 하늘 두 하늘』(1989), 『옥중일기』(1991) 등이 있고, 수필집에 『새 것, 아름다운 것』(1984)이 있으며, 『꿈이 오는 새벽』(1984), 『통일을 비는 마음』(1989), 『히브리 민중사』(1990), 『가슴으로 만난 평양』(1990) 등이 있다.
강북구의 자연과 4.19기념관, 근현대사 기념관, 윤 국영 가옥, 문익환 통일에 집을 여러 곳의 역사 기행을 하면서 선열들의 덕분에 지금까지 자유 민주주의를 수호할 수 있었고, 자유, 평등, 민주의 이념이 선열들의 피땀과 희생으로 일구어낸 정의를 꽃피울 수 있었다는 것을 생생한 역사를 느낄 수 있었다. 끝
<서울=나우인터넷뉴스=장용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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