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묘앞역 3번출구에서 200m 거리의 작은 헌책방들 (이미지출처_네이버지도)

3월 둘째 주의 봄날, 햇살이 따스히 내리쬐는 동묘 앞을 가다

서울의 번화한 도심 속, 낡고 오래된 책들이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며 누군가의 손길을 기다리는 곳이 있다. 바로 동묘앞 벼룩시장과 청계천을 잇는 헌책방 거리다.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도 이곳은 서울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헌책방 거리로, 단순히 중고책을 사고파는 공간을 넘어 서울의 지식과 문화, 기억이 응축된 특별한 장소로서의 의미를 지닌다.

벼룩시장과 함께 형성된 헌책방 거리에는 여전히 세월을 견디며 살아남은 책들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곳에서 우리는 잃어버린 시간과 기억을 다시 만날 수 있다. 그러나 이 거리는 지금, 사라질 위기에 놓여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헌책방들은 점차 줄어들고, 그 자리를 대체할 것은 무엇일까?

인터넷이 발달하기 이전에는 한 가정마다 있었던 외국어사전들 (사진=홍샛별 기자)


과거의 영광, 현재의 위기

청계천 헌책방 거리는 1959년 청계천 복개 이전부터 형성되었으며, 한때 200여 개의 서점이 자리를 잡았던 이곳은 이제 20여 곳으로 그 수가 줄어들었다. 동묘 일대의 헌책방은 1980년대부터 구제 의류와 함께 형성되었으며, 주말마다 빈티지와 헌책을 찾는 이들이 모여들며 독특한 문화를 이루었다. 그러나 이젠, 그마저도 위기에 처해 있다. 개발과 임대료 상승, 온라인 서점의 발전이 이들 헌책방을 점점 더 좁은 공간으로 몰아넣고 있다.

헌책방의 사장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이 거리의 책들은 오래된 책이 아니라 살아남은 책입니다. 시간이 지나며 세상에 단 하나만 남은 책들이죠." 그리고 이곳에서 여전히 책을 고르고 판매하는 일은 그저 책을 사고파는 일이 아니라, 책을 이해하고 그 가치를 아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 되어 버렸다.

주인을 기다리는 수많은 헌책들 (사진=홍샛별 기자)

여전히 이어지는, 그러나 아련한 이야기들

동묘 일대의 헌책방은 이제 다섯 곳으로 줄어들었다. 그 중 한 곳은 최근 문을 닫았다고 한다. 30년 가까이 동묘에서 책을 팔아 온 사장님은 "책을 보는 눈이 있어야 할 수 있고 아무나 못하는 고된 일"이라며, 이곳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단순한 거래가 아님을 강조한다. 이 헌책방들은 단지 낡은 책을 파는 곳이 아니라, 책을 통해 사람들의 기억과 시간을 이어주는 공간이다.

이곳을 찾는 손님들은 매우 다양하다. 전직 국회의원, 의사/한의사부터 노숙인까지, 이 거리의 독특한 매력을 아는 사람들은 다양한 계층에서 찾아온다. 고택 정리 중 발견된 귀한 고서가 이곳을 통해 세상에 나오기도 한다. 최근에는 사서삼경 전질이 한 손님을 통해 이곳에 입고되기도 했다.

한 지방 고택에서 건져진, 사서삼경 전질(사진=홍샛별 기자)


변화하는 소비 문화, 새로운 가능성

동묘 헌책방은 이제 단순한 서점이 아니다. 최근 들어 젊은 세대가 빈티지 감성의 일환으로 헌책을 찾는 일이 늘고 있다. 예쁜 디자인의 영어 원서나 레트로 느낌의 책들이 인테리어 소품으로 활용되는 경우가 많아졌다. 과거엔 주로 공부용으로 책을 사던 사람들이 많았으나, 지금은 사진 소품이나 뮤직비디오 소품으로 쓰이는 경우가 늘어난 것이다. 이 변화는 SNS를 통해 헌책방이 다시 문화 공간으로 재조명되면서 일어난 현상이다. 그러나 여전히 "이 거리의 진짜 의미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는 씁쓸한 이야기도 들린다.

인테리어 소품으로 새로운 임무가 주어진, 양질의 원서들 (사진=홍샛별 기자)


문화 공간으로서의 새로운 가능성

이 변화가 일시적인 유행일지, 지속 가능한 트렌드일지는 아직 확실치 않다. 하지만 서울시와 민간에서는 헌책방 거리를 살리기 위한 여러 시도를 하고 있다. 예를 들어, 서울책보고 같은 공공형 헌책방 공간 운영과 청계천 헌책방 축제와 같은 시민 참여형 행사들이 그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헌책방이 지속적으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단기적인 이벤트 이상의 장기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현실적인 임대료 지원과 세제 혜택, 그리고 젊은 세대와 협력한 문화 프로그램을 통해 헌책방을 단순한 상점이 아닌 문화·예술 복합 공간으로 탈바꿈시켜야 한다.

서울책보고 내부(이미지출처_서울책보고 홈페이지)

헌책의 진정한 가치

“헌책은 단순히 싸구려가 아니다. 더 이상 나올 수 없는 유일한 책이다. 그 자체로 보물이다.”

헌책방 사장님의 말을 기억하며, 동묘앞 헌책방 거리를 걷다 보면, 세월을 견디며 살아남은 책들이 품고 있는 특별한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이 책들은 단순히 낡은 것이 아니라, 시간을 살아온 지식의 유산이며, 그 자체로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보물들이다. 서울의 한 켠에서 여전히 누군가는 그 보물을 찾아 나서고 있다. 헌책방은 더 이상 잊힌 공간이 아니다. 그것은 새롭게 발견될 보물의 장소, 그리고 현재와 미래의 문화 공간으로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소설가 김영하는 헌책의 가치를 이렇게 말했다.

"다시 읽히지 않을 책이라면 헌책방 주인이 사지 않기 때문에 헌책은 굉장한 가치가 있다"

특히 유난히도 책을 읽지 않는 요즘 같은 시대에 헌책은 단순히 오래된 책이 아니라 수많은 책 중에 살아남은 ‘보물 중의 보물’로 봐야 할 것이다.

봄내음 가득한 주말, 동묘/청계천 헌책방 거리에서 ‘보물찾기’를 하며 시간탐험을 해 보는 건 어떨까.

'헌책방', 마음이 부자가 될 수 있는 곳(사진=홍샛별 기자)

<서울=나우인터넷뉴스=글·사진/홍샛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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